그렇게 반하고 쓰러져 자고 경치에 혹하며 10일 동안 숙소를 8번 옮겼다. 한곳에 오래 있을 만한 곳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만 이동시간이 길다 보니 우리 두 아이는 뒷자리에서 잠자는 시간이 길어지고 난 옆에서 쏟아지는 잠을 참는 시간이 길었다. ‘괜찮아 자도 돼’ 라는 남편 말로 바깥 경치를 대신 할 수는 없었다.

이동 중에나 볼 수 있는 풍경들. 관광지가 아니어서 더 좋은 풍경들이 있다. 개인이 이동하면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소소한 일상의 모습이다. 양이며 소가 슬렁 슬렁 돌아다니면서 풀 뜯는 모습도 있지만 허물어진 오래된 집 옆에 지은 자연스러운 새 집. 그런 별것 아닌 듯한 곳의 그런 경치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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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집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있고, 다다음 세대 사람들이 아마도 새롭게 옆에다 집을 짓고 올리브 나무며 포도 나무며 양이며 소를 키우고 있는 것 같다. 지나가는 길에 쭉 처져 있는 울타리는 내 농장이, 내가 관리해야 하는 땅의 경계를 보여주고 간간이 그 농장의 이름인 듯한 커다란 문패? 가 보인다. 이런 곳에서 지하수는? 생필품은? 난방이나? 등등 별별 생각을 다 하며 그들의 하루 삶이 궁금해 진다.

그러니 그 시간 잠을 잘 수가 없다. 무거운 눈꺼풀에 비해 머릿속은 내가 밭에 나가 양을 돌보고 포도를 따고 포도주를 담그고 등등… 비몽사몽으로 영화를 찍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상은 남편이 외국에서 운전을 즐기는 것과 같은 나만의 여행방법인지도 모른다.

가끔가다 깨서 밖을 쳐다 보고는 ‘아 멋지다’ 하고 조금만 지나면 또 쏟아지는 잠 때문에 좋은 광경을 놓치는 아이들을 깨우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아쉽지만 매번 깨울 수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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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하늘이 푸르다.

먹구름이 몰려들 때 하늘도 멋지다. 그 하늘 아래 회벽에 붉은 흙 기와들이 어우러져 생긴 마을과 그곳을 통치했건 핍박했건 그 동네 지주였을 귀족들의 오래된 성곽들과 그 사이 사이 깔린 돌길들. 그렇게 조상들이 만들어 준 풍경 덕에 지나다니는 모든 오랜 된 시골 시가지들은 멋져 보이고, 바다건너 날아온 우리에게는 기억하고 싶은 이국적인 장면으로 남는다.

거기에, 시골의 소도시 작은 마을을 지나다 보면 올리버 트위스트 뮤지컬이나 레미제라블에서 튀어 나온 듯한 복장의 할아버지 할머니 들의 보습은 마치 이 나라 민속촌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가지게 한다. 우리가 빠르게 입고 먹고 돈 벌고 지내는 동안 여기는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 사는 사람은 척박하고 하루 하루가 힘든 노동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지나며 보는 관광객으로는 그 모습 또한 예쁘게 기억에 남는다.

스페인에서 포르투갈, 포루투갈에서 스페인 그렇게 이동하면서, 통치하는 사람이야 구역을 나눠 관리해야 하지만 국경인근에서 사는 사람들은 국경을 얼마나 의식하고 살았을까 궁금해 진다. 별 다를 것 없는 풍경. 별로 다르지 않은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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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모우라 Igreja Matriz de São João Baptista [편집자]
그런데 포르투갈이 더 느낌 있는 나라로 남아있다. 그 이유가 뭘까? 사실 메리다의 로마시대 유적지도 놀랍고 멋졌지만, 그 다음 들린 모우라에서 본 주민들이나 주변의 소박한 경치와 아직도 마을의 중심이 되고 있는 듯한 이끼 낀 흙 기와 지붕의 성당 내부는, 세비야 성당에서 본 무게감 있는 웅장한 조각품이나 그림 유적물들과 비교할 수 없이 소박하지만, 가슴에 애잔한 느낌을 남겨주었다.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사랑과 일과 삶 죽음에 대해 기도 했을거라는 뭉클함을 느꼈던 순간이 기억난다. 오래된 성당 문을 연 순간 오감으로 전해진 그 때 느낌이. 그 이후 간 세비야 성당 보고 놀랐지만 아이들도 왜 이렇게 크고 멋진 성당을 보고 그 작은 성당이 더 좋다는 느낌이 들지? 했던 그 말도.

별반 다르지 않은 포르투갈과 스페인 사람들의 삶일 것 같은데 국경을 사이에 놓고 양쪽이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일단 포르투갈 사람들은 언어 천재다. 영어며 스페인어 포르투갈어에 어떤 사람은 독일어나 프랑스어도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하고 싶었던 것은 ‘쉼’ 이다.

열심히 스트레스 받은 당신 떠나라! 시간 맞춰 무엇을 해야 하고 행여 식구들 건강 축날까 걱정하는 그런 상황에서 다 놓고 쉬고 싶었다. 나만 생각하면서… 그런데 뭐 눈에 보이는 데 완전 쉴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내 손으로 밥해주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데리고 오고 데려다 주고 내 일하러 가고 그렇게 스케줄 잡아가며 살던 삶에서 남이 해준 것 골라 먹고 좋은 경치 보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편안하게 우리와 함께 낯선 이국적인 상황을 함께 보고 공감하고 이야기 나누는 이 시간을 무척이나 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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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남편이 식구들 각자 카드를 만들라고 한 다이너스카드가 아주 쬐금 일조했다. 솔직히, 여행정보나 여행지에 대해 거의 무뇌한인 나는 그런 면에선 성질을 좀 부리지만 남편 말을 잘 듣는다. 워낙 잘 뒤지고 숫자 좋아하는 남편 덕에 나의 그나마 좀 남아있던 숫자에 대한 기본적인 재능을 포기하면서 외면하는 사태까지 벌어진 마당에, 내 맘과 상관없이 남편 말이 이 방면에선 답이라고 생각하고 시키는 데로 했다.

여권과 함께 카드를 각자 꼭 챙겨야 한다는 지시에 따라 챙겨 놓으니, 출국부터 그리고 공항간 갈아 타는 대기시간 동안 공항 라운지 이용을 무료로 편안하게 잘 이용했다.

단점은, 라운지 이용하려면 내가 가진 카드와 조인된 라운지를 해당 공항에서 잘 찾아가야 하는 거, 라운지 이용객이 많으면 자리가 없을 수도 있겠다는 것, 그리고 라운지에서 마련한 음식만 먹어야 하니 선택의 폭은 라운지에 따라 다르다는 것. 뷔페식이니 배터지지 않게 조절할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

사실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것 같다.

커피한잔을 먹어도 4,5천원 하는데 커피에 머핀에 주스 비스킷, 과일은 기본이고, 어디는 샐러드나 상당한 끼니가 될 음식도 제공하는 곳이 있다. 내가 알코올과 안 친해서 그렇지 친한 사람은 병 병이 잔 잔이 마셔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치 좋은 카페에 온 것처럼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달달한 비스킷과 설레이는 여행객들의 기운을 느끼며 몸을 소파에 기대니 그 순간이 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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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를, 잠시 시간과 신분 상승 여행을 떠나게 해 준 숙소가 이번 여행의 백미였다.

도착한 첫날과 세비야와 그라나다 그리고 출발하기 전날은 보통의 호텔에서 잤다. 그 외에는 살짝 외곽의 작은 유명지역으로 돌면서 옛 성을 리모델링해서 고급 숙소로 사용하는 파라도르 같은 곳들에서 호텔 놀이를 했다.

물론 남편이 여행계획을 얘기할 때, 시큰둥한 나나 아이들에게 여행의 향기를 불러 일으키기 위해 파라도르 이야기를 꺼냈고, 우리들은 ‘혹’하고 얘기를 들으며 설레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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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Parador de Mérida, 한쪽 구석에 위치한 인적없는 응접실? [편집자]
지나친 기대는 실망감을 안겨주지만 나의 상상력이 부족 했었던 건가? 메리다에서 체크인하고 들어갈 때부터 자는 방을 찾아가는 복도, 계단, 방문, 방문을 여는 손잡이, 방안의 벽면, 천장, 전등, 베란다 창문, 창 밖의 풍경, 해에 따라 바뀌는 창 밖의 영상, 가로등이 켜지며 변신한 창 밖의 밤 풍경.

이런 감동을 포르투갈 두 곳의 숙소와 스페인 두 곳의 파라도르에서 선사 받았다.

숙소마다 다른 분위기와 주변의 다른 경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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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Hotel de Moura, 로비 옆 응접실. 글쓴이 얼굴 전격 공개 [편집자]
남편이 의외라며 들어서자 마자 흐믓해 한 포르투갈에서 묵은 첫 숙소는. 그저 모든 게 다 훌륭해 보이는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모우라에 예약할 때 가격보고 많이 저렴해 기대를 안 했다는 것이다. 남편의 말을 듣고 봐서 그런가? 메리다 보다 더 정겨운 이 성의 옛 주인은 왠지 이 동네에 존경받는 귀족이 아니었을까? 또 소설을 써본다.

대체로 포르투갈의 숙소들은 포근하고 정겨웠다. 그렇다고 귀족스럽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왠지 스페인 숙소는 같은 귀족이라도 좀 외향적이었을 것 같고 포르투갈은 내향적이었을 것 같은 분위기? 민족성이야 이나라 저나라 확장하러 다닌 것 보면 두 나라 다 전투적이었던 것 같던데. 내가 받은 숙소에서의 느낌은 붙어있는 두 나라가 다르게 느껴졌다.

방 밖에 로비나 거실로 쓰인 곳 마다 벽난로 와 푹신한 소파, 탁자와 훌륭한 천정과 오래된 인테리어 소품들이 있다. 거기 앉아서 남편과 나는 산책이 끝나면 사진도 찍고 길게 소파에 앉아도 보며 방과 다른 분위기를 음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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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호텔이면 호텔, 파라도르면 파라도르마다 조식을 포함시키려고 무척 애를 쓴 남편의 공 덕에 약간의 늦잠과 잘 차려진 아침과 각각 같은 메뉴를 다르게 조리하는 음식들을 맛 볼 수 있었던 시간도 나에게 휴식을 충분히 준 부분이다.

시차때문에 새벽같이 깨서 아침을 기다린다. 아침을 먹어야 움직일 수 있다는 강박관념도 있고 아이들은 시차와 상관없이 잘도 자는 것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부부, 아이 둘, 이렇게 다른 방을 쓰다 보니 서로 합의 된 것은 7시 반쯤 아침 먹으러 가자는 것이어서 새벽에 그 합의를 다시 바꿀 수 없는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부지런함은, 조식이 차려지기 전부터 일어나 조식이 차려지는 냄새를 다 맡으며 세팅이 끝나는 타이밍을 기다렸다가 식구들을 깨워서 거의 1등으로 간다. 보니까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다른 나라보다 조식시작시간을 좀 지나 느지막이 일어나 느긋하게 식사한다. 식사가 끝나면 급한 사람은 화장실로 향하고 남은 사람은 아침의 고성을 구경한다.

그중 제일 정원이 멋진 곳은 포루투갈에서 이틀을 잔 에스토이( 발음이 맞는지 모르겠다) 지역의 포사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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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Pousada Palácio Estói 의 새벽 [편집자]
옛 성이 좌우로 길게 되어 있는데, 그곳을 옛 것 그대로 두어서 앞쪽 정원 쪽은 손님들 쉬는 거실 겸 로비, 뒤쪽은 식사하는 곳과 주방 입구 로비 이렇게 구성하고, 숙소는 이어서 새로 건물을 지어 방도 무척 넓어 리조트에 온 것 같은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파티를 열었을 것 같은 긴 거실과 붙은 바깥쪽 문을 열면 마차로 들어오는 손님을 맞았을 법한 조각된 돌 난간과 데크가 나오고 이어져있는 계단으로 내려가면 정원으로 갈 수 있다. 스테인드글라스로 만든 작은 돔형 방이 있고 계단 아래엔 벽면에 붙은 조각에서 물이 나오는 분수?가 있다. 양쪽으로는 오렌지가 정신없이 열려 일부는 땅에 떨어져 있고 저 멀리에는 철문이 보인다. 저기까지 걸어가 보고 싶은데 꽤 거리가 되보여 하루 일정을 생각해 결국 못 가 본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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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Parador de Arcos de la Frontera, 테라스에서 바라본 해질녁과 일출 전경 [편집자]
다음은 다시 스페인에 위치한 뭐 어쩌고 프론테라다. 나름 유명한 곳 같은데 마을을 형성한 산꼭데기에 성당과 함께 옆에 파라도르가 있었다. 그곳을 향해 가는데 네비는 분명 길이 있다 하는데 도저히 차가 지나 다닐 것 같은 길이 아니었다.

나중 검색해 보니 좁은 길로 차가 겨우 빠져나가는 인증샷들이 올라와 있다. 그러니 자동차에 상처가 많지. 게다가 차가 좀 더 컸으면 우린 저 아래 차를 두고 올라와야 했을지도 모른다. 렌터카 회사에서 알아서 작은 차를 준건 아닐까? 얼마나 좁던지 나오던 날은 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올라간 건 얼떨결에 올라갔는데 나오는게 더 어려워 보였다. 운전 좋아하던 남편도 거기서 숨이 멈췄을 거다.

%. 참고로 이 글에 언급된 숙소들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습니다. 겨울 비수기라 좀 더 싸게 구할 수 있었고, 1박 1실 기준 평균 10만원(조식 포함) 미만이었습니다. [편집자]

 

*** 2편 끝 –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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