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

쉬우면 그냥 나간다 란 단어를 쓰겠지. 탈출이란 단어가 왜 생겼을까?

작년, 남편과 작은애를 두고 큰애와 나만 유럽여행을 했다. 부러워하는 둘째에게 내년엔 빚을 내서라도 유럽으로 가족여행을 가자고 위로하며 고3을 잘 넘기길 바랬고 아이에게도 그게 희망리스트중 하나로 힘을 주었다. 그런데 그건 1학기 얘기다. 2학기가 되니 수시에 수능에 마지막 내신에, 아이는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나도 작년 하고 올해 다르게 갱년기 증세가 고개를 자꾸 든다. 하지만 어디 감히 고3앞에서! 그렇게 깨갱! 하는 판인데 남편은 내게 비행기표를 언제 끊으면 좋겠냐고 자꾸 묻는다.

여보세요~ 지금 비행기 표 라니요! 대학 선정, 과 선정, 자소서 수정, 아이는 수시접수마감이 가까워 오니 퀭한 눈 에 몰골도 딱하지만 예민해져서 감히 여행 얘기를 꺼낼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다 주말에 여행계획 얘기를 꺼내는 바람에 결국 아이가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처음엔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여행 간다 생각하니 신나 하다가 갑자기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여행 얘기할 때냐며 속상해 했다.

아이고, 하여간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 남편은 자꾸 비싸지는 비행기표를 보고 있자니 열불이 나는지 2월 9일 출발 해서 19일에 돌아오는 걸로, 구정을 끼고 가면 그나마 아이들은 방학이니 괜찮을 테고 각자 일터에는 덜 민폐일 것이라고 통보하고 끊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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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집에 일이 하나 둘 터지기 시작했다. 큰아이가 오토바이 타고가다 승용차와 접촉 사고가 나서 다치고, 수능을 앞두고 우리 집 노견 2호가 1호를 제치고 먼저 우주로 여행을 떠나고, 게다가 포항 지진까지!

멘붕이 시작됐다. 작은애의 퀭한 눈이 이젠 퉁퉁 부어 올랐다.  수능 대박은 무슨! 그냥 속상할 일만 만들지 않으면 된다… 아끼고 사랑하던 노견 2호 은하가 남긴 말 – 영원한 것은 없다.

말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도 상황도 잦아들었다. 그런데 이번엔 남편이 숙박을 알아봐야 한다고 한다. 뜻대로 하시옵소서 따르겠나이다. 난 식구들 추스르는데 온 신경이 가 있었고 뭐 내가 아는게 있어야 계획도 짜지 싶었다.

그렇게 난리가 끝나면서 상황도 여행 계획도 마무리 되나 싶었는데, 큰애가 교환학생으로 갈 나라가 바뀌게 되었다. 개강 날짜들이 다르니 우리 여행 여행 일정과 안 맞을지도 몰랐다. 아직 상처도 안 낫고.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이번엔, 작은 아이 졸업식이 지진으로 8일이었는데 9일로 미뤄졌다. 9일을 출발 일로 잡은 이유가 졸업식 하고 대학 OT전에 돌아와야 하기때문에 그렇게 잡은 것인데 .결국 졸업식에 작은애는 참석을 못하게 되어 아빠가 그 원망의 레이저를 다 맞았다.

큰애도 원망 반 자의 반으로 우리 일정과 맞추려고 고민고민하다가 독일로 결정했는데 지금 보니 더 잘 된 상황으로 바뀐 것 같다. 그래서 지금 큰아이는 독일에서 열일 중이다.

두번째 파도가 첫번째 파도와 함께 지나가나 싶었다. 거꾸로 매달려도 시간은 간다더니, 갈 수나 있겠나 싶던 여행이 날짜가 가까워 오니 가야 되나 보다로 바뀌었다.

여행 갔다 오는 날 4-5시간이나 자려나? 오는 날은 바로 작은애가 OT를 들어가야 한다. 체력도 별로 안 좋은 아이인데.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에 끊은 비행기표라 정말 빡빡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각자 스케줄이 생기니 이래 저래 신경 쓸 일이 많았다.

나는 나대로 학원 일도 있지만 집에 사건사고가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그렇게 하나 둘 마무리가 되어간다 싶었다. 이제 짐만 챙기자. 예쁘게 맘 놓고 멋도 좀 부려보자…싶었는데 내 몸에 얘기치 않은 문제가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트레스 때문 인 것 같다. 갑자기 시작된 어깨 통증으로 죽을 것 같았다. 출발 전 일주일이 되어가는데 통증으로 시작된 어깨때문인지 팔이 움직이질 않는다. 이 몸으로는 도저히 여행을 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누구냐. 울 남편은 또 어떻고. 보약과 진통제를 싸 들고 난 2월 9일 가족과 함께 집을 탈출 했다. 게다가 해외로. 그것도 스페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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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 우리나라가 저 아래 보인다. 툭툭 던지는 씨크함이 내게는 좋게만 느껴지는 영국항공을 타고. 이제 좀 쉬자. 노견 1호, 아직은 괜찮은 견공 3마리 냥이 2마리, 거북이 1마리, 성질 더러운 앵무새 1마리, 둘째 친구 참한 알바님께 맡겼으니 지저분한 집안일도 그동안 밀려왔던 일들 다 잊자. 잊자!!

공항에 내려 남편은 렌터카 사무실로 갔다. 뭐라 뭐라 해서 싸인을 하는데 원하던 차종은 없고 같은 레벨 차로 준다고 한다.

여행이 끝나고 느끼는 건, 영국이 시크하다 했는데 스페인은 좀 뭐랄까? 사람마다 친절의 정의가 다 다른 것 같은 분위기에 약간 양평스러운 퉁명스러움이 있다고 해야 하나? 내가 양평에서 살아서 툭툭 던지는 말에 익숙해져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난 그냥 다 좋다. 아마도 탈출해서 오는 너그러움인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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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퉁명스런 설명을 듣고 밤에 찾아 간 주차장에서 주변을 두세 번 돌다 알려준 넘버의 차를 겨우 찾았는데 차를 보자 마자 남편의 게이지가 올라가는 것 같았다. 원하는 차가 아닌 것도 화가 나는데 트렁크가 작아서 더 그랬다. 게다가 차 외관을 살펴보는데 여기 저기 상처가 있다.

일본에서 렌트 할 때는 직원이 꼼꼼히 보고 체크하고 사인 받고 넘겨 주는데 여기는 알아서 차고지 가서 차를 찾아가라는 데다가 막상 찾은 차는 상처가 군데 군데 많아서 사진 찍다가 그냥 말아 버렸다.

처음 보는 차라 검색해보니 우리나라에 있긴 한데 몇 대 없는 이탈리아 명차라고 소개는 되어 있다. 다 생각 나름이다. 내가 이런걸 언제 타보겠냐. 우리 4가족이 타기엔 좀 좁지만 그래도 타이어가 넓어서 그런지 승차감은 아주아주 좋았다. 게다가 연비까지 훌륭했다.

그리고 여행 마무리에 접어 들 때 얘네 차들이 왜 이렇게 상처가 많은지 그리고 그 상처를 구지 따질 필요가 없는 것도, 무사히 가져오면 돌려준다는 예치금의 의미를 잘 알게 되었다.

작년 바르셀로나 갔을 때보다 뚜벅이는 덜해도 되었지만 그래도 이미 남편한테 슬쩍 들은 여행일정으로는 부상 투혼이 필요했다. 운전자 옆에서 버티기 쉬운 시간이 아닐 것이라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공항에서 나오는 데 차단기가 안 올라가 ‘난감 쇼’를 할 때 우리에게 스페인어를 쏟아 붓던 아저씨의 도움으로 어떤 상황이라 안 올라가는지도 모르지만 우린 공항을 벗어났다. 패키지가 아니기에 벌어지는 해프닝이 시작되었다. 스페인 포루투갈에서 자판기나 무인 정산기에 대한 공포의 첫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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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숙소며 일정이며 다 짰다. 손 안대고 코 풀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 코가 여기 저기 튀면서 뭍을 수 있다는 걸 아마도 많은 사람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탁 트인 옥색 섞은 파란색의 하늘이 초록과 만난 길을 달리는 걸 최고의 행복으로 생각하는 남편은 장거리 운전이 마냥 즐겁기만 한 것 같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이웃하니 둘 다 돌아 보자고 해서 좋겠다 했다.

너무 차 많이 타면 힘들다 걱정 했지만, 하루면 다 볼 수 있다는 남편 말에 정신 없던 시기라 그래 뜻 대로 하시옵소서 했는데 정말 뜻 대로 9일 동안 지겹게 차 타고 다녔다. 처음엔 처음이라 좋았고 그 다음엔 숙소에 뿅 가고 그리고 오래되어 삭아 가는 벽돌의 성곽이 운치 있어 뿅 가고 그 다음은 바다에 그리고 성당의 소박하지만 압도되는 성스러운 분위기에 그리고 웅장한 성당에 반하고 놀라서 감탄을 연발하며 다녔다.

 

*** 아래 사진은 여행 계획을 세웠던 편집자가 이해를 돕기위해 추가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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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메리다에서 포르투갈 모우라 가는 길에 넘은 한적한 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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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터카 없이는 가기 어려운 포르투갈 Benagil Caves

 

*** 1편 끝 –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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