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그 첫인상

지하철이 처음 생긴 어린 시절 빙글 빙글 순환선을 타고 새로운 문물을 즐기다 내렸는데 주머니에 넣어 둔 지하철 표를 잃어버려 당황의 늪에 빠졌던 기억은 내게 표에 대한 트라우마를 선사했다.

극장에 가서 미리 예매한 표를 주머니에서 가방으로 가방에서 다시 손으로, 주머니로, 불안증 때문에 계속 옮기다 결국 입장하려는데 표가 없어 가방을 바닥에 쏟아 붓고서야 수첩사이에 끼어 놓은 표를 찾은 기억은 넌 앞으로도 표 때문에 계속 시달림을 받을 것이란 저주의 증거였다.

그 저주가 하필 프라하 공항에서 발휘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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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없소? 도와줄 사람이 안 보였다. 쓸데없이 어떤 미국인은 내게 와서 무엇을 도와줄까요? 하더니 자기는 제주도에 가본 적이 있고 제주도에 친구가 있다는 둥 한 참 정신없이 떠들더니 굿 럭! 이란 무책임한 말을 날리고 갔다. 그 와중에 그 영어는 들리더라. 쓸데없이 집중력을 발휘 하다가 방금 출근한 듯 순찰 도는 직원이 눈에 띄었다. 한글이랑 영어랑 막 섞어서 떠드는데 딸애가 돕는다. 그 사람 대충 알아들었는지 듣고 이상하다 한다. 출국심사를 하려면 표가 있어야 하는데 들어온 것을 보면 표가 이 안에서 없어지지 않고서야 출국심사대 밖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보니 그 말이 맞다. 그런데 출국심사한 사람은 나보고 계속 ‘exit!’만 외쳤다. 정말 나갔으면 어쩔 뻔했나. 그 때 나가는 곳은 중국 단체관광객으로 꽉 막혔었는데.

마지막 수단으로 남편한테 전화해서 어쩌지? 하며 성질을 부렸다. 남편은 그냥 go! 하란다. 일단 표를 끊은 것이니 가면 답이 있을 거라고. 평소 못 미덥던 남편 말이지만 그래도 여행은 나보다 경험이 있으니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출국 검사대를 거치고 나서 영국항공출발 게이트 앞에 갔다. 어! 아까 머리 띠한 남자승무원이 표 검사 부스에 앉아있다. 이젠 우리 딸래미의 영어 스피킹 시간. 그는 무표정으로 우리얘기를 듣고는 바로 표를 다시 끊어줬다.

다리가 탁 풀어졌다. ‘뭐야! 이리 간단한일을’

다 빠져나간 피가 다시 스믈 스믈 어디선가 기어올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감기 기운으로 으슬으슬 했었는데 갑자기 분비된 아드레날인의 왕성한 활동으로 물러갔던 감기가 풀린 다리를 타고 목으로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딸애한테 미안함과 괜히 남편한테 성질은 또 왜 부렸는지. 쪼금미안하다. 지금도 그 표가 어디로 갔을지 생각해보면 출국 심사한 그 할 아저씨가 범인임이 틀림없다는 심증만 있을 뿐이다. 언어가 안 통하니 이를 어쩌랴. 그 와중에 영어를 못 알아들으니 한국어로 섞어 마구 떠든 내 꼴이 리플레이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생각이 났다. 부디 한국인인줄 모르길.

마지막 엄청난 추억거리 하나 만들며 프라하를 떴다. 난 또 올 거야. 잃어버린 표를 찾아서~

그렇게 프라하에서 영국~ 영국에서 잠깐 대기하다 일본 동경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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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애는 일본을 여러 번 갔는데 내가 가본 적이 없다 하여 2박3일 도쿄에 머물고 집으로 오는 걸 계획했다. 사실 도쿄를 보고 나니 프라하에서 좀 더 있고 됴쿄은 그냥 하루만 있다 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다시 이 경로로 여행계획을 짜게 된다면 됴쿄을 빼버리고 싶은 마음이다. 도쿄에 도착했을 때 몸도 좋지 않았는데 공기가 안 좋다 보니까 기분도 몸도 별로 안 좋았다.

공항에서 내려 그나마 복잡한 전철을 한번 경험한 딸애 덕분에 내게 물어봐 달라고 조르는 민망한 로봇의 도움 없이 숙소가 있는 곳까지 미로 찾기 게임 하듯이 잘 찾아 왔다.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 명동에 오면 이런 느낌을 받지 않을까? 다들 일하러 단체가 돼서 움직이기 때문에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려면 사람을 건너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을 지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다들 양복과 정장을 빼 입고 바쁘게들 움직이고 있다.

사무실로 둘러싸인 곳에 숙소가 있었고 호텔직원이 친절하다고 느낄 힘도 없었다. 피곤해서 눕고 싶은데 3시부터 입실이란다. 도착이 거의 10시경이었는데… 뭐할까 찾아봐도 갈 데가 없어 보인다. 일본말을 사용하며 아무대서나 담배를 피워대는 명동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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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둘 데를 찾다 스타벅스가 눈에 띄어 들어가서 마실 것을 주문하고 자리 겨우 잡고 앉으니 여기도 역시 사방에서 담배를 피워댄다. 그래도 어쩌겠나. 담배연기와 함께 꾸벅 꾸벅 졸다가 호텔가서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편의점에서 찾은 감기약은 졸음을 불러들이는데 그래도 일본에 왔으니 뭘 봐야겠다고 다음날 찾아 간 곳이 신주쿠공원이었다.

일본패션 마스크와 일본 강력인기 감기약을 구입해서 먹고 해살 들어오는 공원에서 벤치만 보면 앉아 졸았다. 오래된 나무들이 인상적이었던 신주쿠공원을 돌아다니니 그나마 일본에서의 우울했던 여행기분이 나아졌다. 온실도 구경하고 오래된 나무 아래 서서 하늘을 보니 도쿄하늘도 볼만했다. 각 나라 정원 만들어 놓은 곳도 가고 연못도 보고 거기 바글거리는 잉어들도 보면서 오랜 일본을 느껴보려 했다. 다 구경하고 나오는데 연세 있으신 분들이 입구에서부터 카메라를 하나씩 들고 사진 찍기에 바쁘다. 사진 동호회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도 이 공원은 찍을 거리가 많은 곳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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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높다란 빌딩보다 오래된 나무를 보는 것은 늘 기분 좋은 일이다. 그렇게 좋아진 기분을 가지고 신주쿠 일본 쇼핑센터에 갔다.

일본 동경을 치면 꼭 사와야 할 것들이라는 목록이 여기 저기 블로그에 올라와 있다. 나도 질세라 물건을 보러 갔는데. 솔직히 영국런던 바르셀로나 프라하에서는 아기자기 예쁜 물건에 홀려서 이 느낌을 담을 수 있는 물건은 무엇이 적당할까? 고민하며 골랐는데 일본에서는 같은 쇼핑인데 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신주쿠보다 사무실로 둘러싸인 숙소 있는 곳의 작지만 알찬 가게가 더 저렴하다는 딸에 말에 엄청난 물건들을 뒤로하고 바로 빠져나왔다.

도쿄를 일본 방문지로 처음 가는 게 아니었다. 지금 기억에서 좋은 곳이라고는 공원과 신주쿠에서 숙소로 오다 우연히 들린 커다란 문구점이다. 없는 게 없던 문구백화점은 문구류면 사족을 못 쓰는 내 DNA를 다시 불러일으킨 곳이다. 무엇을 만들려고 하면 바로 그 재료가 있을 것만 같던 그 백화점은 아마 체인인 것 같은데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일본에 가면 한번쯤 꼭 들리고 싶은 곳이겠다 싶었다.

거기서 산 철 칠판페인트로 칠한 판은 지금 우리 집 여행 자석붙이는 멋진 게시판이 되었고 찰흙 같은 재료는 지금 변신을 꿈꾸며 수면 중이고 애니메이션용 서적은 가끔 따라 그리는데 쏠쏠한 도움을 주고 있다.

동경에서의 뿌연 공기와 회색 건물들 그리고 신주쿠의 어이없이 과도한 노출의 여학생만화간판과 들쩍지근한데다 짜기 까지 한 라면으로 일본의 첫인상이 구겨졌지만 사람 사는데 한 모습만 있을까? 그렇게 일본 여행을 마치고 숙소 근처가게에서 구입한 tex free 보따리와 감기를 데리고 딸과 함께 나의 집으로 향했다.

 

이제 집으로

공항에 내리니 남편이 마중 나왔다. 바리바리 싸온 짐을 던지고 수다가 시작되었다. 떠나올 때 보이지 않아 걱정하던 우리 집 고양이 이야기에서부터 첫 숙소를 찾아가서 어떻게 돈을 아끼고 뭘 먹고… 이렇게 이야기 하다 보니 힘들었던 일들이 재미난 일로 바뀐다. 울 딸 덕에 그래도 편했다는 이야기는 꼭 양념으로 들어가고. 작은 애는 어찌하고 있었는지 뭘 먹고 빨래는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여행 중 전화 통화로, 작은 애는 아빠 요리솜씨가 늘었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더니 내 얼굴 보더니 청국장찌게가 먹고 싶다고 한다. 미안함과 안쓰러움 더하기 집에 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밀려들 것 같던 집안일은 걱정과 달리 감당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고민해서 고른 여행 전리품에 대한 품평회를 늦은 밤까지 하면서 다음에 둘째의 입시라는 큰 일을 치르면 가족이 함께 빚을 내어서라도 여행을 가자고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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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부가 딸과 함께 간 여행이 뭐 대수 이겠나. 용감하게 계획을 세우고 세계 일주를 하고 또 다른 여행을 꿈꾸는 젊은이나 중년 또는 가족 등 요즘은 많은 사람들의 대단한 여행 이야기가 많은데.

하지만, 언젠간 가리라 라고 생각하며 그들의 여행기를 부러워 하다가 모든 일을 잠시 제껴 두고 질러보니 의외로 쉬운 일들이 있고 책에서 읽은 것처럼 마냥 멋지고 낭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상 속에서 특별함은 멀리 있지 않다는 뻔한 사실을 체험하고 왔다. 그러니 각자가 떠나는 여행은 각자에게 소중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행여 떨어질세라 엄마 옷자락을 잡고 졸졸 따라다니던 큰애가 커서 엄마의 의지바지가 되어서 리드도 해주니 이제는 엄마 품에서 훌쩍 떠나도 될 나이가 실감난다. 어린 시절 유치원 안가겠다고 드러눕던 이야기, 엘리베이터 못타던 이야기, 하나 둘 셋…못 세던 이야기와 꼬물거리던 손으로 멋지게 그려내던 고래와 말을 보고 놀라던 아빠이야기, 동생이 태어나서 바뀐 행동들 등. 한보따리 이야기를 나눴건만 그래도 부족한 딸과의 시간을 여행 내내 보내며 나도 모르게 자라서 바뀌게 된 딸의 취향과 이제는 나이 들어 달라진 내 취향도 서로 공유하고 이해하게 되면서 그동안 함께 한 시간들이 참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영원할 수 없지만, 이 경험은 추억이 되어 내 기억 속에 영원히 남게 될 것이고 어쩌면 아주 나중에는 지금의 기억보다 더 아름답게 변색되어 기억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면 아이와 지낸 추억들이 너무나 소중하고 아름답게 기억되고 있듯이 말이다.

여행은 자금이 필요하다.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서 얻는 것들은 앉아서 상상으로 얻을 수 없는 것들을 얻게 해 준다. 결단을 해야 하고 몸을 움직여야 한다.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체험하지 못하니 느끼고 얻을 수 없는 게 여행이다. 우리가족이 함께 했던 여행들 그리고 딸과 단 둘이 떠난 여행들. 이렇게 떠난 여행의 경험들이 하나 둘 쌓여 우리 아이들에게는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는 큰 날개가 되어줄 것이다. 벌써 날개 짓을 시작한 큰 딸아이에게 1년이 지난 지금 함께 가주어서 고맙다고 이야기 해 주고 싶다. 얼굴 보면 쑥스러우니 여기다가만… 그리고 내년 쯤 둘째와 단둘이 함께 좋은 시간을 계획해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 The End ***

관련 글: 유럽을 듣다 – 1엄마랑 가자 – 1유럽을 듣다 – 2엄마랑 가자 – 2유럽을 듣다 – 3엄마랑 가자 – 3유럽을 듣다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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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을 다녀온 모녀가 탑승했던 항공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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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항공권은 11월 29일  유럽을 듣다 – 1 을 소개하며 당시에 찾아본 항공권입니다. 2018년 1월 출발로 날짜만 다르고 거의 비슷한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런던 구간 최저가 좌석은 동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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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럴 때는 또 다른 선택지가 있습니다. 런던가는 도중에 도쿄를 경유하면 유사한 날짜에 아직도 최저가 좌석이 가능합니다. 구석구석 싼 좌석이 있는 경로와 날짜를 찾을 수 있는 Follow On의 매력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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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선택지도 있습니다. 영국항공과 이베리아항공의 조합으로 도쿄로 돌아오는 항공권입니다. 앞의 항공권에 비해 22만원 넘게 저렴하니 도쿄-서울 구간 편도 항공권을 별도로 구입해도 남는 장사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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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도쿄가 아닌 도시로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글쓴이는 프라하에서 걸린 감기 때문에 대도시인 도쿄에서 고생만 하고 돌아왔는데요. 감기에 걸린다해도, 후쿠오카가 속한 규슈 지방은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는 료칸이 즐비하니 오히려 몸을 추스리는 여정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영국항공으로 유럽을 가는 다양하고 매력적인 항공권은 Follow On 서비스에서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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