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프라하

다른 건 다 똘똘한 것 같은데 이상하게 지역, 나라, 사람이름과 같은 고유명사에 약해서 상식 없어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걸 극복하고자 나름 애 써 봤지만 잘 되지 않는다. 남편은 이런 나보고 지도를 안 봐 버릇해서 그렇다고 한다. 그 구박을 받기 전부터 집 벽 여기 저기 붙여 놓은 세계지도는 우리 아이들이 자라며 ‘세계로 눈을 뜨며 크라.’는 의미도 있지만, 사실 속뜻은 이렇게 지도를 붙여 놓으면 나를 뛰어 넘는 아이들로 성장하겠거니 했던 믿음이었다. 하지만 10여 년째 벽 지도는 지도 보기 좋아하는 남편이 무식한 우리들을 가르치는 교육 자료로 사용 중이다.

이번에 여정을 짤 때 여러 번 설명을 해 줬지만 왜 그렇게 건성으로 들리는지. 난 집안일하다 마주치는 세계지도를 보며 우리가 갈 여정을 손가락으로 짚어보는 정성을 기울였었다. 그런데 며칠 전 내게 어떤 지인이 ‘체코 갔다 왔지? 난 패키지로 가는데 프라하가면 자유 시간에 뭐해야 할까?’ 라며 마치 내가 여행 고수인양 물어왔다.

나는 상대 말을 끝까지 듣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비밀이었는데 프라하가 체코에 있는지 몰랐었다. 프라하 이야기를 하니까 ‘그래 맞아 나 프라하 갔다 왔는데’ 속을 쓸어내리며 고수처럼 설명해줬다.

2박 3일 동안 내가 느낀 프라하는 춥지만 예쁘고 그림형제 책에 등장할 법한 해골시계와 성곽 그 앞으로 멋지게 유유히 흐르는 강 과 다리 그리고 엄청 큰 대형트리와 그 옆에 나를 홀린 마켓들이다. 자유 시간에 뭘 할까? 다시 가서 시간을 보낸다면 높은 곳에 올라 강을 바라보며 멍하니 프라하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 같다. 단, 좀 덜 추울 때.

아직도 내가 체코에 갔다 왔다는 생각은 안 들고 프라하에 갔다 왔다는 희한한 생각이 드는 건 어려서부터 그나마 나라이름보다 먼저 내게 다가온 프라하란 이름 때문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더 헷갈리게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되었단다. 그러니 내가 더 헷갈리지.

프라하에 도착할 때는 살면서 쌓아 놓은 발바닥 에너지가 4/5정도 소진 된 상태였다. 지금을 즐기기 보다는 세 번째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이번엔 프라하 책을 펼쳤다. 뭐 딱히 볼게 없다는 것인지 하멜마켓 얘기와 유명한 천문시계와 프라하 성? 그리고 환전한 이야기가 내가 읽고 머릿속에 정리된 전부였다. 게다가 환전을 다른데서 하면 안 된다며 몇 번의 설명을 남편에서 들어서 그 내용이 더 각인 되었는지도 모른다.

도착시간이 오후 3시 정도 되었었는데 어둡다. 공항에 내려 버스를 타고 이동한 것 같은데 어떻게 찾아 갔는지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프라하 시내에서 내리니 벌써 컴컴하다. 구글 지도로 미리 찍은 곳에 가서 이번에도 어리바리 환전을 했는데 이제는 돈만 내가 들고 다니지 딸래미가 찾아가고 환전하고 알아서 척척 한다.

프라하에서 제일 큰 부담이었던 환전이 끝나니 좀 마음이 놓이면서 이번엔 호텔을 찾아 가려고 방향을 잡고 걸어가기 시작했다. 캐리어 잡은 손가락이 시려오더니 ‘많이 춥다’는 생각에 중간에 서서 캐리어에서 겉옷을 쑤시쑤시 꺼내 입었다. 마지막날 바르셀로나도 따뜻하고 비행기 안도 더워서 너무 두껍게 입었나 싶은 와중에 내려서 시원하다 했더니 점점 추워지는 한기에 겉옷을 꺼내 입어도 따뜻한 느낌이 안 들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득템한 스카프롤 뒤지고 찾는데 이러고 있는 내 모습이 꼭 노숙자 같았다.

기다릴 딸에게 미안해 포기하고 그냥 옷깃을 여미고 가는데 손가락으로 내 소중한 체온이 빠져나가고 있다. 추위가 극에 달해가고 있는데 구글이 가라는 것만 믿고 간 호텔은 나중에 보니 환전한 곳에서 직선으로 가면 가까웠을 것을 돌아서 가게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나서는 살짝 배신감이 들었다. 얼마나 추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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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들어간 호텔은? 정말 좋았다. 세 번째 미션 클리어 하는 순간!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은 객실에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2박밖에 안한다니. 게다가 마지막 날 새벽같이 나와야 한다는 사실이 들어가면서부터 슬프게 했다. 난방이 빵빵하게 나오고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커다란 창 앞에 큰 쿠션과 방석을 두었고 침대는 창을 바라보게 위치해 있었다.

프라하가 멋지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호텔 안이 멋질 줄이야.

솔직히 호텔가는 길은 멋질 게 없었다. 음산하고 어둡고 울퉁불퉁하고 오래된 돌 블럭을 지나느라 캐리어와 내 손목이 고생만 했지 주변에 뭐 볼게 없었다. 그런데 올드타운스퀘어를 찾아 가보니 호텔에서도 가까운 편이었고 그곳은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여기가 예쁜 프라하의 관광지입니다.’ 라고 말해주는 듯 우아한 캐롤이 흐르고 TV에서나 보던 큰 트리와 작지만 아담한 플리마켓들이 줄줄이 반짝거리고 먹거리와 트리장식용품 및 프라하의 유명 인형 등을 팔고 주변엔 식당들이 예쁘게 늘어서 있었다.

‘뭣 좀 먹자’ 일단 트리가 잘 보이는 집에 들어갔다. 난로도 있고 담요도 준다. 가격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비싸지만 난 딱 양이 좋게 맞았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동네 식당들이 관광객상대라 다른 데보다 비싼 편이었다. 난로와 담요로 따뜻할 줄 알고 자리했는데 마지막 한 숟갈이 입에 들어갈 때는 추위를 버티기 위해 발가락운동을 열심히 해야 했다.

걸으며 마켓구경하면서 미리 크리스마스를 즐기면 좀 덜 춥겠거니 나와 돌아다니는데, 내가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서 그런 것도 있고 프라하가 이리 추운지에 대한 정보를 소홀했던 것도 있었다. 트리가 예쁘다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딸애 손가락이 빨개져서 보다 못해 ‘너 손 안 시리냐?’ 하는데 엄만 많이 춥겠다며 걱정을 해 주는 딸애는 춥기는커녕 신나 죽겠다는 눈치였다. 이 예쁜 분위기를 즐기는데 초치기 싫어 ‘아니야 견딜 만 해’ 했지만 덜덜 떨리며 나오는 목소리는 감추기 힘들다.

저쪽에 사람들이 무리지어 있어 그 속에 들어가 펭귄처럼 추위를 막아보자 갔더니 거기가 바로 천문시계 앞이다. 주변 사람들 덕에 추위가 참을 만해질 때 종소리가 나더니 커다란 시계 아래로 해골들이 나왔다 들어간다. 정교한 예술작품이다. 그런데 왜 해골? 서민들에게 종교의 경외심을 심어주기 위한 상징 아니었겠나 알아서 해석하며 요란한 종소리와 함께 본 천문시계는 괴기하고 멋지고 정교하고 예쁘면서 우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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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저런 색상의 분위기가 나오는지. 이쪽 문화가 만들어낸 작품을 감상하며 이해하려 애썼는데 땡땡땡이 한바탕 끝나니 사람들이 흩어진다. 온기를 따라 아까 눈여겨 본 길거리 음식 파는 곳에 가서 돌돌 말아 화덕에 굽는 빵과 따뜻한 사과주스 그리고 딸은 따뜻한 와인을 마셨다. 화덕이 있어 그나마 참을 만한데다 추위에 먹는 따뜻한 음료로 잠시나마 온기를 느끼자니 성냥팔이 소녀가 생각난다.

딸애는 따뜻한 와인을 지금도 얘기한다.

프라하는 예쁜데 추웠다. 아직도 대낮처럼 즐기는 분위기를 뒤로 하고 따뜻하고 멋진 호텔에서의 밤을 보내기로 했다. 호텔이 난방을 너무 잘 틀어준 덕분에 널어놓은 젖은 수건이 뻣뻣하게 마른다. 피곤함과 체온조절 실패와 건조함의 3박자로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지만 예쁜 프라하에서 예쁘다고 마냥 호텔에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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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풍경의 달력사진을 여기서 찍었겠다 싶은 광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이게 진짜냐’ 감탄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 프라하성을 한 바퀴 돌았다. 굳이 그 안은 구경하고 싶지 않았다. 단체 여행객들과 함께 다니는 것도 그랬지만 그냥 딸이랑 걸으며 시시콜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더 좋게 느껴지는 프라하였다.

영국백조에 이어 프라하 백조와 교감도 나누고 사람 홀리는 유리 공예와 인형 파는 집에서 고민 고민하며 득템을 했을 때 기쁨은 명품을 얻은 것과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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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다 감탄하며 종업원을 처다 봤을 때 민망한 무뚝뚝함도 시크함으로 보이는 귀여운 문어와 여우와 크리스마스 장식품들 그리고 수공예 부엉이 목걸이와 흔들면 흔들 흔들 날아가는 모양의 앵무새 인형을 바르셀로나 코코넛 용가리와 함께 넣을 때 부러질까 깨질까 조심스럽게 싸느라 난감했던 일들도 다 추억이 되어 있다.

아침 7:00시 비행기를 타기위해 새벽같이 나와서 예약한 택시를 기다리느라 속이 지리지리 타들어갔던 기억과 아침을 못 먹으니 조금만 아침거리를 싸주면 좋겠다고 부탁한 일을 후회하게 만든 엄청난 양의 아침 폭탄 패키지를 한 가방씩 받았을 때의 과분한 친절을 보태주어 11월에 꼭 다시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되었다.

살짝 아쉬워야 더 간절해지는 건 여행도 마친 가지 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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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을 베풀어준 키다리 호텔직원이 무색하게 들들 볶아 겨우 늦게 도착한 택시를 탔을 때 이게 프라하의 마지막 추억이겠다 싶었다. 그래서 팁도 남은 잔돈으로 두둑하게 선심도 썼다. 이제 어마 무시한 도시락을 먹고 티켓팅하고 프라하를 뜬다. 라고 생각하고 출국심사 받고 보안 검사를 하기 전 남은 도시락을 해치우며 검사대에 앞서 점퍼를 벗고 티켓을 확인하는데…

‘어라 티켓 하나가 없다!’

프라하에서 런던 , 런던에서 일본으로 갈아타는 건데 이중 런던 행 티켓이 실종되었다. 머릿속의 피가 발로 쭉 빠져나간다.

*** 3편 끝 –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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