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가우디 도시

셜록이 들고 다닐 법한 여행 가방을 든 하얀 할아버지가 옆자리에 앉아 영어책을 보고 계신다. 곱게 나이 들어 보이는 하얀 할아버지에게 문득 말을 붙여 보고 싶었지만 그다음 일어날 뒷감당을 할 수 없으니 입을 꾹 다물고 스페인 여행서를 급 초치기로 읽어갔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국제공항은 런던 히스로 공항 보다는 좀 오래된 것 같은 느낌? 공항에 내려서 전철을 타기 위해서는 보수가 필요해 보이는 오래된 긴 지하보도 모양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거의 저녁 8시가 넘어가는 시간. 낯선 곳에서 어둠은 긴장감을 더 가중 시키는데, 방향이 모호한 안내판 말고도 여러 사람이 이 길로 가니까 맞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달달 캐리어를 끌고 부지런히 갔다.

T-10티켓 자판기 두 대가 있다. 사람들을 따라 우리도 줄서서 앞사람들이 하는 것을 눈 여겨 보다가 딸아이가 선택하려고 손가락을 준비하고 있는데 역시나 구글에서 검색한 메뉴가 안 보인다. 기계별 기능이 다른가 싶어 옆 기계를 기웃거리는데 화난 듯 스페인어를 쏟아내는 안내원이 도와준단다. 사이사이 영어 단어를 조합해서 T-10 표를 샀다.

구입한 표로 개찰구를 들어가 보니 횡 덩그런 전철역에, 앞서 표 끊고 들어간 여행객들이 삼삼오오 문이 열릴 위치쯤에서 전철을 기다리고 있다. 영국보다는 따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저녁이 되니 여기도 쌀쌀하다. 한참을 기다리다 바르셀로나 행 전철을 탔다. 유럽에서 두 번째 탄 전철. 나라별로 구조가 조금씩 다르다. 영국전철은 좀 비좁게 느껴졌는데 여기는 그래도 좀 넓게 느껴진다. 왠지 모를 좀비영화가 생각나던 밖과 달리 밝은 전철 안에 들어오니 일단 마음이 좀 놓인다.

캐리어를 든 사람들이 정거장에 도착 할 때 마다 한 팀들이 되어 내린다. 역 안내 방송이 나오긴 하는데 잘 못 알아듣겠다. 구글 지도에 표시된 글자와 발음을 안내방송과 맞춰 정거장수를 세면서 추리 끝에 몇 번을 확인하고 목적한 역에 내렸다. 늦은 시간 도심지라 그런지 에스컬레이터는 멈춰있고 역 입구도 공사 중인 듯 비닐과 자재가 널 부러져 있다. 영국에서 좋았던 느낌과 비교하게 되어 설렘은 반감 되고 여행서에서 읽은 안 좋은 사례만 떠올랐다.

지도를 꺼내들고 여행객임을 팍팍 드러내지 말라던 말 때문인지 성격 때문인지 다 아는 척 앞장서서 걷는데 딸아이가 ‘엄마 그쪽인 거 맞아?’ 여행하면서 딸한테 많이 듣게 된 말이다. ‘엄마 지도 보고 일단 방향 정하고 가자. 많이 걸어서 다리도 아픈데’ 나중 큰애 말이 엄마의 무조건 전진본능 때문에 지도 보느라 마음이 바빴다고 한다. 그래도 바르셀로나 호텔에 잘 입성했다. 두 번째 미션 클리어!

한번 영국에서 예방주사 맞고 경험이 싸여가니 두 번째 호텔 체크인과 친절하지만 부담스런 설명도 세련되게 잘 대응하게 되었다. 필요한 와이파이며 식사에 대한 편의시설을 챙기며 조근 조근 영어로 이야기하고 알아듣는 딸을 보니 내 DNA가 제대로 진화 중이라는 생각이 든다.

밤 12시 바에서 뭘 한다는데 내려와 보니 재즈가수가 바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하지만 나나 울 딸에게 필요한 건 주변의 저렴한 슈퍼마켓이었다. 남편이 되도록 시내에 있는 호텔에 예약하느라 값 좀 지불했다고 하던데 그 공이 헛되지 않았다.

호텔이 코너에 위치한데다 높은 층에 방이 있어서 주변 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아래 문 연 슈퍼마켓! 다시 내려와 끼니를 때울 거리가 있나 가보니 영국보다 저렴하고 게다가 우유다운 우유와 사과를 통으로 바로 살 수 있었다. 일단 마켓에서의 느낌은 굿이다. 샌드위치가 질려간다는 큰애와 달리 난 샌드위치체질로 완전히 바뀐듯했다.

게다가 밥도 안하고 빨래도 안하고 학원가서 애들과 볶일 걱정 없으니 뭘 먹어도 맛만 있었다. 내게 이번 여행은 처음 느낀 해방이다. 잠시 해방. 그러니 뭔들 맛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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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획 딸아이가 스페인 여행은 최대한 계획을 세웠다.

고교시절 가우디 영상을 보고 큰 감명을 받았었다며 기대를 품고 계획한 가우디 건축물 투어는 이번 여행에서 큰아이가 가장 공들여 계획한 부분이다. 관람시간과 표 예약, 호텔과의 동선. 사실 영국은 스페인을 위한 전초전이었다. 런던에선 셜록 홈즈 집과 뮤지컬? 그다음은 끌리는 데로 하자고 딸아이가 했기에 내가 본전생각에 여기 저기 가자 한 것이지 큰애는 보고 싶은 것 보고나면 다른 것엔 정말 미련이 없어보였다.

큰아이가 꼭 봐야 한다고 노래 부르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 카사밀라, 카사 바트요, 구엘공원, 구엘 저택을 3박 4일에 걸쳐서 구경하기 위해 아침마다 서둘러 엄청 걸어 다녔다. 뽀샵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싶게 가이드북 사진이며 인터넷 사진들이 근사하다 했는데 가서 그 건물 속에 있자니 사진가들이 모든 것을 못 담는 게 답답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우디가 이 건물들을 설계하고 짓는 동안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싶게 작은 것 하나 하나까지 모든 것이 다 예쁘고 놀랍다. 파랑색 계통으로 마치 바다 속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주는 카사바트요 건물 속에서 살던 주인공들은 어떻게 삶을 누렸을까? 하녀들이 했을 많은 일들 중에 그들은 무엇이 불편했을까? 궁금증이 극도에 오르지만 해드셋으로 듣는 말에는 한계가 있었다. 간간이 해석해준 딸의 이야기와 내가 나름 들은 말을 조합하여 내 맘 데로 상상 하면서 집 주인이 되어 돌아다녔다.

가우디가 지은 건물들은 모든 기둥이나 벽들이 둥글둥글 되어있어 마치 부드럽게 조성된 동굴을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벽에 머릴 박아도 찢어질 만큼의 모난 기둥이나 모서리가 없어 심리적으로도 어린아이 들이 뛰어다녀도 안전감이 느껴질 것 같다. 단충도 아니고 4층 5층 되는 건물의 하중도 계산했어야 했을 텐데 예술적 표현 뿐 아니라 구조계산에도 능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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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지을 수 있도록 팍팍 지원해준 건축주는 또 어떻고. 가우디가 우리나라에 태어났으면 멋들어진 한옥을 만들어 냈을 텐데. 스페인에 태어나서 이렇게 멋진 아파트 모양의 건물을 만들었듯이 말이다. 이 나라 환경과 국민성 모든 것이 조합되어서 ‘가우디 맘데로’ 건물들이 나오지 않았겠는가? 예쁜 파란색 조각타일들의 조합과 건물 전체가 파이프 오르간의 스피커가 된 것도 창문하나 벽면 문손잡이 가구 계단 등 뭐 하나 놓친 게 없어 보인다. 성당부터 사람들이 지금도 살고 있는 건물까지 가우디가 이 도시를 먹여 살리는데 일조를 하고 있으니 위대한 사람이다.

가우디는 스페인 사람 중에 친절하고 내성적이고 배려심 많은 별종이었을 거 같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내에서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며 받은 눈길은 그렇게 호의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관광지에 가면 어디나 동양인 단체 여행객들이 있는데 반해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 동양인들이 자주 눈에 띄지는 않아서 인 것 같다. 쬐끄만 나와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동양인인지 서양인인지 구분할 수 없는 우리 딸아이와 동행인걸 보며 어떤 결론을 내려야 하는지 고민이 돼서 그러는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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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뚝뚝하게 느껴지는 사람들과 달리 친절하게 느껴지는 가우디의 건축물과 영국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맛있는 음식들. 그리고 가다가 우연히 들린 오래된 작은 성당, 카탈루냐 광장에서 손재주 좋은 장인들이 만든 너무나 예뻐서 한동안 떠나지 못하고 벵벵 돌게 한 소품들. 결국 거기서 해파리 스테인 글라스를 선택했다.

책에서 보고 문 닫기 전 부리나케 찾아간 올리브에 관한 모든 것을 팔던 상점. 거기서 상점 안을 휩쓸던 한국인 모녀와 달리 구매욕을 나름 참느라 애쓴 나. 그리고 온몸을 구리색으로 칠하고 동상마임을 하던 의지의 예술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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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바닷가로 가다가 관광객대상 상점에서 구입한 어이없는 메이드인 인도네시아 코코넛 용가리(?) 풍경은 지금도 오다가다 한번 씩 흔들어 소리를 들으면, 바르셀로나에서 샀다는 이유만으로 그때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그걸 집에 와서 꺼낼 때 우리 남편의 어이없어 하던 표정이란~.

특히나 불가사의한 건축물로 보일정도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에서 나오기 싫어 기념품점을 대 여섯 번 들락날락 거리며 무엇으로 이것을 기념할까 고민하다 구입한 작은 촛대는 신기하게도 초를 킬 때마다 성당 안에서 구경하고 있는 그 시간으로 데려다 준다.

작은애랑 왔으면 좋았겠다. 아이아빠는 쓸데없는 것 보느라 시간 간다고 구박했겠지? 좋은 것을 보면 가족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는가보다.

영국이랑 다른 스페인. 우리가 일본사람과 다르듯이 유럽하면 ‘비슷하겠지?’ 란 생각을 완전히 날려버렸다.

자 이제 맛난 스페인 음식과 그리고 북적이는 가우디 건물 관람도 이제 끝내야 한다. 내일은 프라하로 출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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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엘 공원 간다고 후문방향의 버스를 타는 바람에 가도 가도 공원이 안보일 때, 강아지 세 마리와 산책하며 우리에게 친절하게 방향을 알려주시던 훤칠한 아저씨도, 구엘 공원에서 줄줄이 내려올 때 우리에게 개똥 밟지 말라며 위치를 손가락으로 알려주는 센스 있는 친절을 베풀어준 어떤 분도 기념품점에서 구입한 구엘 도마뱀과 함께 기억 속에 넣어놓고, 주체 못하게 비집고 나오는 코코넛 용가리 풍경을 부러질까 조심조심 캐리어에 넣고 호텔을 나왔다. 한 회 남은 T-10 티켓을 마지막 기념품으로 챙기고 우린 프라하 행 비행기를 탔다.

*** 2편 끝 –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 ***

관련 글: 유럽을 듣다 – 1엄마랑 가자 – 1유럽을 듣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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