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바르셀로나를 걷다

중학교 때 가우디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이후 나는 일종의 판타지가 생겼었다. 곡선과 자연을 사랑한 건축가 가우디. 카메라에 담긴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아름다운 내부를 보며 언젠가 그곳에 꼭 가겠노라 다짐했는데, 정말로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찾아 보니 가우디의 건축물들은 인기가 상당해 예약제로 운영되었으며 피시방처럼 정해진 관람 시간이 있었다.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하면 비싸거나 티켓이 없는 경우가 있다고 해 미리 한국에서 예매를 한 상태였다.

일부러 숙소도 가우디의 건축물들의 한 가운데에 잡았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카사바트요, 카사밀라 세 건축물의 중앙 지점이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 밤이었고, 우리는 기차를 타고 시내로 이동했다. 먼저 숙소를 찾아 체크인하고 짐을 놓은 후에,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 발견한 마트에서 아침에 먹을 만한 것들을 사고 돌아와 죽은 듯이 잤다. 이상하게도 이 때의 기억은 별로 나지 않는다.

바르셀로나에서 맞는 아침. 숙소의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엄마는 아침을 준비해 줬다. 전날 밤에 산 샌드위치와 사과, 그리고 소시지. 소시지는 충동적으로 샀는데, 뜨거운 물에 덥혀 먹으니 꿀맛이었다.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사그라다 파밀리아로 향했다.

꽤 가까워서 20분 정도 걸었던 것 같다. 런던에서도 엄청나게 걸어 다녔기 때문에 발은 이미 너덜너덜해져 아침부터 아팠지만 익숙해지니 견딜 만 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과연 꽤 멀리서도 그 위용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아침이었지만 주변은 관광객으로 바글거렸고, 우리는 주변을 돌며 그 겉모습을 훑어 보고 티켓시간에 맞춰 입장했다.

입구에서부터 보이는 그 섬세함과 아름다움… 사실 겉모습은 거무튀튀하고 쪼글쪼글한 것이 왜 그런가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모두 돌을 조각한 것이었다. 세상에. 그 큰 성당의 외벽이 모두 조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심지어 대충 한 것도 아니고 매우 섬세한 조각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에는 총 세 개의 파사드가 있는데 각각 예수의 탄생, 수난, 신의 영광을 나타내며 각각의 파사드를 맡은 건축가에 따라 다른 모습의 조각들이 외벽을 둘러싸고 있었다. 아직도 공사 중인 이 성당은 입장료로만 공사가 이루어진다더라. 가우디의 작품을 이렇게 여러 사람이 모여 오랜 시간 공들여 쌓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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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에 들어서자 감동은 더했다. 상상도 못한 광경이었다. 내부는 온갖 찬란한 빛으로 가득했다. 누군가가 ‘천국’이라는 단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듯한 모습이었다. 기둥은 나뭇가지처럼 유연하게 뻗어 천장을 받치고 있었고, 거대한 숲 같은 천장에선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옆의 무수히 많은 창문과 그 창문을 수놓은 색색의 스테인드 글라스에선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성당 안을 각각의 빛깔로 물들였다.

말 그대로 황홀한 경험이었다. 엄마와 나는 미친 듯이 셀카를 찍고, 또 그 빛들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발악했다. 하지만 카메라에 그 풍경을 온전히 담기는 힘들었다. 벽을 따라서 사람들이 앉을 수 있는 구조물이 있었는데, 그곳에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냥 앉아서 보기만 해도 좋았다. 나에게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해가 점점 낮아짐에 따라 성당 안을 비추는 빛의 각도와 모양도 달라졌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서 나왔다. 그래도 성수기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성수기엔 발 디딜 틈도 없이 구경해야 한다고.

가우디의 건축물을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감상하고 싶어 그 날의 일정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하나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에서 나오자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고, 해는 어느새 질 기세여서 고민하던 우리는 급하게 카사밀라로 걸어 갔다. 현장에서 티켓을 사자 각각의 섹션에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헤드셋과 기계를 줬다. 그걸 머리에 끼고 카사 밀라의 계단을 올랐다.

카사밀라는 동화 속의 집 같았다. 모든 것이 곡선이었으며 심지어 문고리 하나조차 가우디의 손길이 안 닿은 것이 없다고 했다. 집 안이 출렁거리는 듯 했다. 개인적으로 설명 들으랴, 엄마랑 이야기하랴 사진 찍으랴 너무 정신이 없었다. 옥상에 도착하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물결치듯 출렁이는 옥상에서 바르셀로나 시내를 한참을 바라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내려왔다.

거의 마감 시간에 쫓겨 나왔는데, 나오자 만족도 설문을 하더라. 특이하게도 태블릿을 들고 와 모든 항목을 읽어 주고 거기에 대답했다. 예를 들면 카사밀라의 운영 시간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느냐 같은 질문이었다. 쏟아지는 영어에 정신 바짝 차리고 무사히 설문을 마치고 나오는데, 엄마가 어떻게 그렇게 다 알아 듣냐며 딸 잘 키웠다고 한마디 했다. 그리고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도 이 일을 두고두고 자랑했다. 사실 나도 이렇게 영어로 길게 대화해 본 것이 거의 처음이어서 신기한 경험이었다.

카사밀라를 나오자 몸은 지칠 대로 지치고 발은 터질 것만 같았다. 대충 식당을 눈으로 스캔한 뒤 적당한 곳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는데, 관광객이 많은 동네라 그런지 한글 메뉴판이 있었다. 유명한 스페인 음식인 빠에야와 꼴뚜기를 철판에 볶은 것 같은 타파스 하나, 그리고 스페인식 절인 햄인 하몽, 와인과 각종 과일을 넣은 칵테일 상그리아 두 잔을 주문했다.

어느새 해는 모습을 감췄고 우리는 피곤함을 잊은 채 여유롭게 식사를 했다. 음식은 전반적으로 매우 맛있었다. 런던에서 샌드위치만 물리도록 먹다 와서 그런지 오랜만에 음식다운 음식을 먹은 것 같았다. 엄마는 조금만 마시면 금세 취하는 사람이라, 내가 거의 상그리아 한잔 반, 엄마는 반잔 정도 마셨는데 살짝 취기가 돌았다. 달달해서 그리 취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엄마도 기분 좋게 취한 것 같았다. 기분이 매우 좋아 들뜬 상태로 바르셀로나의 밤 거리를 걸었다. 가다가 벤치에 걸터 앉아 쓸데 없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팔짱을 끼고 조금씩 비틀대며 걸었던 밤길.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정말 기분 좋았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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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의 둘째 날, 거리가 좀 있는 구엘 공원에 11시쯤 예약을 해 놨었다. 나름 여유가 있어 밍기적대며 일어나 버스를 타고 공원으로 향했다. 버스는 안내방송도, 역을 알려주는 전광판도 없었다…..오직 GPS와 구글 지도에 의지해 겨우 구엘공원 초입에 내렸다.

야트막한 산길을 따라 줄줄이 집들이 늘어서 있었고 콘크리트 길이 난 아래로 바르셀로나의 시내가 내려다 보이고, 저 멀리 바다가 함께 보였다. 거기서부터 구엘 공원 입구를 한참을 찾아 헤매었다. 아침이라 그런지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이 참 많았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물어보고, 지도를 들고 한참 헤매어 결국 공원의 입장을 찾아냈다. 구엘공원은 가운데 중심부만 유료 입장이고 바깥쪽은 무료로 개방되어 있는데, 바깥쪽에서도 돌을 쌓아 만든 산책길이나 아치 등이 심심찮게 보였다. 그 사이로 조깅하는 주민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입장 시간에 늦을까 황급히 구엘공원 중심부를 찾아갔다.

구엘 공원은 자연을 사랑하는 가우디가, 그곳에서 파낸 돌로 기둥과 길을 닦았고, 최대한 지형을 파괴하지 않고 살리려고 했다고 한다. 역시 곡선과 모자이크가 가득했고, 가우디의 상징처럼 되어 버린 모자이크 도롱뇽도 만날 수 있었다. 구불구불 광장을 둘러싼 모자이크 벤치에선 바르셀로나 시내와 그 바다가 아득하게 보였는데, 그 벤치는 허리가 닿는 부분이 굽이쳐 허리를 펴고 앉을 수 있었고, 물이 고이지 않도록 구멍과 배수로가 있는 등 아주 섬세하게 만들어 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원은 매우 넓었는데, 곳곳에서 재미있는 구조물과 모자이크 등의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공원 내부의 카페테리아가 생각 외로 저렴하길래 그곳에서 공원을 감상하며 커피와 샌드위치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마지막으로 사진을 열심히 찍은 뒤 공원을 나왔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매우 강렬한 기억이었지만 이 공원은 잔잔하게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 자연을 존중하는 가우디의 방식이 참 아름다웠다.

공원을 나올 때쯤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기념품 점을 돌아다니며 비를 피했다. 시간이 꽤 남아 카사바트요로 갔는데, 줄이 엄청나게 길더라… 카사바트요는 우리 숙소의 거의 코앞에 있었기 때문에 노트북으로 바로 다음날 아침 표를 예매하고 내일 오기로 한 뒤 무작정 시내 탐방을 떠났다.

까탈루냐 광장까지 걸어 가면서 온갖 상점에 들락거리며 쇼핑을 즐겼다. 광장 근처의 골목 사이사이 돌아다니며 구경했는데 활기가 넘치고 팔딱팔딱 뛰는 느낌의 거리였다. 큰 거리의 중앙을 따라 핸드메이드 제품을 파는 플리마켓이 늘어서 있었다. 젊은 아티스트들이 형형색색의 자신의 작품을 팔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눈에 띄는 유리공예 제품을 구입했다. 거리를 쏘다니며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 보고 있자니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다리와 발의 아픔도 거의 한계에 다다라, 근처 백화점의 지하 식품관에 들러 저녁과 아침에 먹을 것을 샀다. 바르셀로나에서 신기했던 점은 마트의 카트가,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그 카트가 아니고, 바구니에 바퀴를 매단 것이라는 점이었다. 초록색 바구니에 조그만 바퀴가 달리고 긴 손잡이를 잡고 끌고 다니는 형태였는데 볼수록 웃겼다. 마트 구경도 쏠쏠했다. 엄마는 마트 구경할때가 가장 신나 보였다. 호텔에 돌아와 엄마가 열렬히 원했던 코울슬로와 사과, 샐러드, 체리, 아침에 먹고 남은 소시지와 우유로 나름 근사한 저녁을 차려 먹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날, 전날 밤에 예약한 카사바트요로 향했다. 역시나 헤드셋과 음성안내기기를 쥐어 줬고 안내멘트를 들으며 카사바트요 탐방에 나섰다. 카사바트요는 겉에서 보면 동물의 뼈 모양의 발코니 등으로 이루어져 기괴하고 아름다운 모습인데, 그 내부는 물을 테마로 했다고 한다. 복도의 유리가 물결 무늬거나, 중앙 홀의 타일의 색깔이 아래로 갈수록 점점 짙어져 정말 물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엄마는 카사바트요가 참 좋았나 보다. 가우디 건축물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카사바트요를 나와 다시 까탈루냐 광장을 거쳐 항구도 구경하고, 출렁이는 바다도 감상하고, 항구 앞에서 열린 골동품 시장도 구경하다가 이것 저것 쇼핑하며 마지막 하루를 보냈다.

마지막 날인 만큼 저녁식사는 근사한 곳에서 하고 싶어, 구글 지도를 뒤져 나름 평이 괜찮은 타파스 집을 찾았다. 바르셀로나 하면 또 해산물 아니겠나! 상그리아 한 주전자(?)시켜 놓고 홀짝거리며 이것 저것 주문해 먹어보았다. 주로 꼬치요리가 많았는데, 영어 메뉴판을 봐도 뭔 소린지 모르겠어서 재료를 직접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가며 주문했다. 가게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기분 좋은 시끄러움이 가득했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친 후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비행기를 타고 바르셀로나를 떠나 프라하로 가야 했기 때문에.

*** 2편 끝 –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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