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트그래프 사용자의 여행기를 공개합니다.  – 편집자 –

0. 여는 글

휴학을 했던 작년,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13일동안 엄마와 함께 떠난 유럽 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다들 유럽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는데, 혼자 갈 용기는 없어 엄마와 손을 잡고 떠났다. 엄마랑 둘이 온전히 보내는 시간. 엄마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또다시 발견하고 알아차리는 시간이었다. 엄청난 영감이 내 머리를 후려친다든가 하는, 인생이 180도 바뀔만한 경험은 아니었다. 우리의 유럽 여행은 조용하고, 잔잔했다. 하지만 내게 무언가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다. 권태로 점철되어 있었던 그동안의 일상에 무언가가 들어왔으니까. 아마 죽기 직전까지 이 기억은 내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삶이 권태로워 질 때에, 모든 것이 지긋지긋하고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싶다고 느낄 때에 유럽을 떠올린다. 언젠간 다시 가고 싶은 그 곳. 그때에 느꼈던 감정, 그리고 우리의 모습을 내 손으로 다시 구성해 내 보려고 한다. 이 글은 내 기억을 더듬어 다시 떠나는 여행이며, 완전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읽는 사람들도 함께 여행을 떠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바다 건너 어딘가 존재하는 그곳을 거닐며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한다.

1. 런던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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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는 공항, 긴장되는 마음으로 허둥지둥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를 타고 잠과 현실을 무한히 반복하다 도착한 런던. 엄마와 나는 둘 다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어디서 타는지 지금 온 이 차를 타면 되는지 한참을 서성대다가 구글 지도에 의지해 지하철에 올랐다. 우리의 숙소는 켄싱턴 역에 있었다. 30분에서 40분 가량 전철을 타고 가는 길. 우리나라에도 있는 지하철이지만 그 모양은 완전 달랐다. 덩치들에 비해 더 조그만 차량, 조그마한 좌석, 낮은 천장, 낯선 얼굴과 냄새의 사람들. 노리끼리한 불빛에 어두운 차창 밖으로 잠깐씩 고개를 내미는 풍경은 우리가 낯선 나라에 있음을 실감나게 했다. 켄싱턴 역에 내리자 비가 엄청난 기세로 떨어지고 있었다. 과연 비의 나라, 맑은 날이 드물다더니. 그러나 우리는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우산은 캐리어 깊은 곳에 처박혀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우리는 길을 몰랐다. 비를 맞으며 헤맬 수도 없는 노릇이라 구글 지도를 켠 채 역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나이 지긋해 보이시는 할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었다. 키가 매우 크시고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길고 가늘어서 새처럼 보이는 새하얀 할아버지였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우리의 호텔 이름을 떠듬떠듬 말했고,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따라오라고 했다. 폭포처럼 떨어지는 빗방울을 온몸으로 맞으며 금방 푹 젖어버린 캐리어를 끌고 할아버지의 뒤를 따랐다. 할아버지는 신문 한 뭉치를 머리에 대고 성큼성큼 걸었다. 골목 두어 개를 돌자 할아버지는 멈춰 서고, 손가락으로 다른 골목을 가리키며 이리로 쭉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곤 행운을 빈다고 하시곤 다시 역으로 뛰어가셨다. 영국의 첫인상은 따뜻했다. 따뜻해진 마음을 안고 엄마와 나는 부랴 부랴 호텔을 찾아 가 짐을 풀었다.

젖은 겉옷을 벗고 짐을 대충 정리한 후, 엄마와 나는 아주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다시 나왔다. 런던의 밤 거리로. 비는 어느새 그쳐 있었고,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 사이로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불빛들, 드라마 속 같은 건물들. 그제서야 런던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역 안에 있던 샌드위치 가게에서 대충 샌드위치를 골라 해치웠다. 잘생긴 알바생이 웃으며 맛있게 먹으라고 했다. 우리는 창가의 구석 자리에 앉아 첫 끼를 해치웠다. 가게를 나와 그 옆의 스시 가게에서 샐러드 등의 아침거리를 사고 호텔 가는 길에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밤의 런던 거리는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마치 꿈 속에 들어 온 것처럼. 비가 온 바닥에 비친 불빛들과 젖은 공기가 한 몫 했다. 내 상상과는 다르게 골목들은 매우 좁았고 자동차들은 그 좁은 곳을 비집고 주차되어 있었다. 엄마와 나는 우리 나라와는 다른 풍경에 계속 감탄하며 런던의 밤길을 걸었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여행에 설레는 마음이 조금씩 피어 올랐다.

유럽에서의 둘째 날. 엄마와 함께 하는 여행의 단점이자 장점은 아침에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는 것. 이른 아침에 엄마는 날 깨웠고, 졸린 눈을 비비며 어제 사 온 아침을 먹었다. 나와 동생 둘이 일본 여행할 때는 아침은 거의 거르거나 아님 식당에서 대충 때웠는데. 구글 지도와 구글 트립 어플을 열어 놓고 어딜 갈까 고민하다가 영국하면 박물관이지! 하고 심지어 무료라는 말에 박물관으로 향했다. 구글 지도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버스도 타고 걸어 가며 찾은 대영박물관. 그 유명한 이름답게 거대했다.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부는 새하얗고 공허했다. 공허했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는데 우리 나라 박물관들이 빽빽하다면 대영박물관은 여백이 많은 느낌이었다. 이상하지는 않았는데, 허무한 느낌 이랄까. 카페테리아가 벽이나 다른 구조물 없이 광장 한 가운데에 있다거나 하는 것이 매우 특이했다. 그리고 기부금으로 운영된다는 점도. 그래서 그런지 박물관 곳곳에 기부함이 눈에 띄었다. 박물관 자체는 매우 흥미롭고 특이했지만 전시물에서 그리 특별한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오히려 기념품 점이 더 재미있었던 기억.

저녁에 런던에서 뮤지컬을 보기로 했기 때문에, 곧장 트라팔가 광장으로 향했다. 트라팔가 광장 옆의 Leicester Squar 라는 곳의 TKTS부스에서 그 날 공연하는 뮤지컬 티켓을 매우 싼 가격에 판매하기 때문이다. 런던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뮤지컬이기 때문에, 부푼 마음을 안고 티켓부스로 향했다. 티켓 부스의 뒤쪽 광장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자그마하게 열리고 있었고, 우리는 티켓 부스 줄에 섰다. 우리 앞쪽에 백발의 노부부가 손을 잡고 어떤 뮤지컬을 볼까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장면이 굉장히 인상 깊어 아직도 기억이 난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힘들게 예매하고, 학생 할인까지 물어보며 알뜰하게 티켓을 구매했다. 이 때에 파는 티켓들은 떨이라서 좋은 자리도 아니고 무대가 가릴 수도 있지만, 그래도 본다는 게 어디냐. 한 사람 당 3-4만원정도에 끊은 것 같다. 엄마 왈, 티켓 부스 창구가 너무 높아서 엄마는 직원을 빼꼼 올려다 봐야 했단다. 뮤지컬은 저녁 7시에 시작이었고 그 전까지 시간이 꽤 남아서 우리는 티켓 부스 뒤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하고, 빅벤을 구경했다. 그러자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11월에 열린 크리스 마스 마켓은 신기하고 새로운 문화였다. 서양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얼마나 큰 이벤트로 생각하는 지 알 수 있었다. 빅벤이 걸쳐진 템스 강은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템스 강이 보이는 벤치에 가만히 앉아 잠시 셀카 타임을 가졌다. 뮤지컬은 Queen’s Theater에서 공연하는데, 그 근처가 차이나 타운이라 그곳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한참을 여러 가게들을 둘러보다 겨우 결정해 들어간 집에서 요리 두 개를 시켰다. 면류나 밥이 아닌 요리 두 개를 시켰는데, 직원은 못 믿겠다는 눈빛으로 밥이나 국수 필요 없냐고 세 번을 물어보더니 알았다 하고 주문을 받았다. 나랑 엄마는 이 직원이 왜 이러지, 하고 음식을 기다렸는데 막상 나온 음식을 보니 이유를 알겠더라. 우리나라의 요리 하면 큰 접시가 나오는데, 얘네는 거의 반찬 수준인 거다. 거대한 식탁에 조그만 접시 두 개만 올려놓으니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가격이 저렴한 것도 아니었다. 충격이기도 창피하기도 했던 우리는 얼른 음식을 해치우고 가게를 도망치듯 나와 공연장으로 향했다.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입장을 기다렸다. 공연장엔 온갖 연령대, 외모의 사람들이 바글거렸다. 뮤지컬이라는 게 그렇게 격식을 차리고 보는 게 아닌 듯 했다. 흡사 한국의 영화관 같았달까. 관객석 자리는 매우 비좁았고, 의자가 간이 의자에 가까웠다. 중간에 통로도 없이 길게 의자를 늘어뜨려 놓아서 가운데 자리로 지나가려면 여러 사람들의 몸과 강제로 비벼야 했다. 무대는 2층 천장 때문에 위쪽이 가려서 시야가 좋지 않았고, 의자는 불편해서 엉덩이가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컬은 엄청났다. 현장에서 듣는 그 음악의 생생함이란! 장발장의 노랫소리가 내 귀를 때리고, 화려한 춤사위는 내 눈을 사로잡았다. 가장 신기했던 건 무대 중앙이 회전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영화에서 카메라가 움직여서 다음 장면으로 앵글을 넘기듯이, 무대가 회전하여 다른 장면을 보여주는 연출에 감탄했다. 쉬는 시간에 사람들은 바깥에 나가 맥주나 주전부리를 사 들고 와 뮤지컬을 관람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 아름다운 음악과 춤. 엄청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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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아침, 발이 너무 아팠다. 트라팔가 광장, 빅벤, 차이나타운 그 곳을 모두 걸어다녔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아픔을 이기고 엄마와 나는 셜록홈즈 박물관으로 향했다. 걸어 가기에는 거리가 꽤 있는 곳이어서 2층 버스를 타고 베이커 가로 향했다. 사실 나는 영국 드라마 셜록의 엄청난 팬이기 때문에, 필수 코스였다. 아침이라 그런지 그 앞은 휑뎅그렁 그 자체였다. 221B라 적힌 셜록의 집 앞에서 사진을 찍고 내부를 구경했다. 드라마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 생각했던 거보다 큰 감동은 없었다. 그냥 신기했던 정도? 엄마도 같이 드라마를 좀 봤었지만 별로 감흥이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거기서 일하는 메이드 복장의 직원 아가씨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짧은 구경을 마치고 우리는 자연사 박물관으로 향했다. 그곳도 역시 무료! 거대한 테마 파크에 온 것 같았다. 자연사박물관과 A&V박물관은 서로 붙어 있어 두 곳을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는데, A&V박물관에는 유명한 미술 작품들의 더미가 전시되어 있었다. 각종 조각과 그림으로 빽빽한 가운데 여러 사람이 곳곳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아름답고 편안해 보였다. 내가 런던에 살았다면 나도 이렇게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가졌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자연사 박물관은 입구부터 어마어마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행성 안으로 들어가 지구의 역사를 경험했다. 솔직히 대영박물관보다 50배 더 재미있었다. 발바닥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구경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자연사 박물관 밖으로 나오자 어느 새 해는 져 있었다. 나오는 길엔 뜬금 없이도 휘황찬란한 회전 목마가 손님도 없이 혼자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그 앞의 벤치에 앉아 그 불빛을 멍하니 구경하며 잠깐 발을 쉬다가, 버킹엄 궁전으로 향했다.

솔직이 영국에 왔으면 버킹엄은 가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찾아간 밤의 버킹엄은 정말…..볼 게 없었다. 드넓은 광장에 잔디밭, 그리고 길쭉한 건물 하나. 별 감흥 없이 사진만 잔뜩 찍고 말았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 점심을 먹고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로 되어있었다. 엄마와 나는 런던을 떠나기가 아쉬워, 근처 공원이라도 들러서 둘러보고 거기서 점심을 먹자 하고 아주 낭만적인 계획을 세웠다. 마트에 들러 기념품 같은 것들과, 점심에 먹을 음식들을 산 뒤 공원에 들렀다 바로 공항으로 갈 요량으로 캐리어를 끌고 공원으로 향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그냥 호텔에 맡겼으면 편했을 것을…. 공원과 공항까지 가는 리무진을 타는 곳은 완전 정 반대 방향이었고, 우리는 그 거리를 계속 캐리어를 끌고 다녀야 했다. 그 날은 유난히 추운 날이었고,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공원은 어마어마하게 넓고 광활했다. 이층 버스를 타면 그 좁은 도로에서 신호등에 부딪히고 옆 차에 부딪힐 것만 같아 조마조마 했는데, 공원은 또 왜 이리 넓은지. 개를 데리고 산책을 온 사람들이 눈에 띄었고, 우리는 광활한 호수 벤치에 자리잡았다. 백조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오리 같은 새들이 수두룩했다. 그 친구들은 우리가 뭔가 먹을 걸 주지 않을까 바라며 계속 근처를 얼쩡거렸고, 우리의 식량을 탐냈다. 엄마와 나는 동물에 꽂히면 끝이 없어, 한참을 그곳에서 새 구경을 하다 점심을 먹었다. 바람은 엄청나게 불고 추워 손은 시리고 밥은 샀으니 먹어야 하는데 먹히지가 않아 쩔쩔 매면서 입에 음식을 구겨 넣었다. 이 때 엄마를 사진 찍었는데, 얼굴이 너무 리얼하고 웃기게 나와서 아직도 그 사진만 보면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공원에서 노닥 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촉박해져 있었고, 거의 캐리어를 끌고 반 달리다시피 해서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런던은 참 특이한 도시였다. 풍경은 삭막하고 우중충한데, 먹을만한 마땅한 음식이라곤 샌드위치 뿐이었는데, 그곳을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개와 함께 출근하던 사람들, 손을 꼭 잡고 공원을 걷던 노부부, 아무도 없던 2층버스의 2층자리. 사람들은 무뚝뚝하지만 친절했고 따뜻했다. 런던의 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오른 버스에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우리는 바르셀로나로 향했다.

*** 1편 끝 –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 ***

이 여행의 항공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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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출발로 같은 여정을 Follow On 해 보았습니다. 아래 이미지를 클릭하면 날짜만 다르고 거의 비슷한 일정으로 다녀올 수 있습니다. 물론 일정은 직접 조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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