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스타트업에서 일하나 봐라!”

올가을,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다시는 스타트업 근처엔 얼씬도 안 하리라 다짐했다.

bye

이제 막 발을 뗀 스타트업의 초기 멤버로 투입되어 고군분투하기를 4년째. 전체 인원이 10명이 채 안 되던 회사는 어느새 직원수 130명에 달하는 규모로 훌쩍 성장해 있었다. 물론 그 안에서 나도 함께 성장했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어 회사에서 인정받는 것도 뿌듯했고, 동료들과 서비스를 하나씩 이루어 나가는 성취감도 달콤했다.


그러나 그만큼 가혹한 것이 스타트업의 현실이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는 것도 아닌 데다가 처음 마주하는 문제들을 눈앞에 두고는 매일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업무를 가이드 해 줄 사람도 없었다.
당연히 모든 업무는 주도적으로 해야 했고, 내 일과 남의 일을 구분 없이 해야 하는 건 그야말로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회사의 규모는 커졌지만, 업무에 대한 경계는 여전히 희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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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돌아보니 일에 대한 흥미와 열정은 온데간데없이 바닥나 버리고, 활활 타버린 재만 남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함께하는 동료들의 격려와 응원도 전처럼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그렇다! 나는 그 빠져나오기 어렵다는 직장인의 슬럼프, ‘번아웃 증후군’의 길목에 들어서고 있었다.

마음이 동하지 않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 오랜 기간 고민했다. 꾸준한 수입도, 이제야 조금은 안정을 찾은 일과 삶의 균형도 모두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다음 직장은 절대로 스타트업이 아닐 것이라 단언하며, 나는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다시는 올 것 같지 않은 자유,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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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떠날 궁리를 하던 나였다. 언제라도 시간이 생기면 알맞은 여행지로 떠날 수 있도록 항공권을 수시로 검색해 보곤 했다. 나에게 여행은 고단하고 지루한 일상으로부터 나를 잠시 분리해 내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었다.  당장에 출근할 회사도 없겠다, 당분간은 자유의 몸이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조금 긴 여행을 떠나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여행 플랜을 짜고, 여러 도시를 한꺼번에 여행하는 비행편을 찾고 싶었다.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보게 된 <플라이트 그래프>라는 항공권 검색 서비스에 접속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또 우연히 채용 공고를 발견한 나는 뭔가에 홀린 듯 어느샌가 메일을 전송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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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공고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스타트업을 한다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세상을 향한 새로운 도전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분

아니, 스타트업에서 다시는 일 안 한다더니……

주사위는 던져졌다. 다시 또 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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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이 확정되었다. 출근을 앞두고 주말 내내 걱정만 했다. 두려웠다. 스타트업의 치열한 현장을 직접 경험해 보았던 게 문제다. 역시 모르는 게 약이다. 게다가 새로운 서비스와 직무에 도전해 본다는 것은 마음을 배로 무겁게 만들었다. 이제 박차를 가해야 하는 서비스에 혹여나 내가 걸림돌이 될까 걱정이 되었고, 부족한 나의 밑천이 드러날까 봐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다. 겁도 없이 떠난 까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길을 끝까지 걸어낸 기억을, 스타트업에서 부딪히고 깨져가며 동료들과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던 경험들을 다 잊은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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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맘을 다독여가며 첫 출근을 한지 이제 2주차가 지나가고 있다. 아직은 업무를 파악하고 조직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는 중이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능력이 출중한 선임들과 함께 훌륭한 서비스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은 것 같다.

나는 다시 또 스타트업의 세계에 이렇게 발을 들였다.
이제 이 롤러코스터에서 비명을 지르는 대신 신나게 즐겨 볼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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